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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중환의 진화의 창]왜 상상의 세계에 빠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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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행복한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51회   작성일Date 24-03-16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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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듄친자’라는 말을 들어 보셨는가? <듄>에 미친 사람이란 뜻이다. <듄>은 서기 2만6391년에 우주에서 가장 귀한 자원 ‘스파이스’를 독점하고자 벌이는 갈등을 담은 SF 영화다. 듄친자들은 영화 <듄: 파트2>를 기꺼이 극장에서 ‘n차’ 관람한다. 10만원이 넘는 6권짜리 소설 전집을 베스트셀러에 등극시킨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수십년 전 소설가 프랭크 허버트가 꾸며낸 세상에서 등장인물들이 스파이스를 두고 싸우건 말건 우리는 알 바 아니지 않나(듄의 세계관을 해설하는 유튜브를 다 시청하고 소설 전집까지 덜컥 산 내 중학생 아들에게 간청하는 말은 아니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구의 세계에 사람들이 깊이 빠져드는 모습은 물론 너무나 친숙한 풍경이다. 소설 <반지의 제왕> 3부작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엄청난 흥행을 했다. 영화 <스타워즈>는 미국의 건국 신화로 자리 잡았다. 소설 <해리 포터>는 전 세계를 강타했다. 만화 <드래곤 볼>은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만화다. 소설 <걸리버 여행기> <1984>, 영화 <어벤져스> <투모로우>, 드라마 <킹덤> <왕좌의 게임>, 비디오 게임 <던전 앤 드래곤> <젤다의 전설> 등 목록은 길게 이어진다.
    판타지, SF, 모험, 슈퍼 히어로, 지구 멸망, 디스토피아 등등 현실과 동떨어진 가상의 세계를 그리는 픽션이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끄는 까닭은 무엇일까?
    진화심리학자 에드가 두보르그와 니콜라 보마르는 탐색 가설을 제안했다. 우리의 먼 조상은 항상 옮겨 다니는 유랑 생활을 했다. 익숙한 곳에 주야장천 눌러앉아 음식, 주거지 같은 자원이 점차 바닥나는 파국을 맞기보다는, 새로운 곳을 줄기차게 탐색하여 자원을 꾸준히 확보하는 편이 더 나았다. 낯선 장소에 왠지 이끌리는 선호가 자연 선택된 것이다. 상상계를 다루는 소설, 만화, 영화, 게임 등은 이러한 원초적 선호를 자극하여 현대인에게 즐거움을 안긴다. 마치 큰 눈과 아장아장 걸음마 같은 인간 아기의 고유한 특성을 귀엽다고 여기게끔 진화한 심리가 아기와 비슷한 특성을 지닌 푸바오에 의해 뜻하지 않게 작동되는 것처럼 말이다.
    흥미롭게도, 상상의 세계를 창조한 작가들은 탐색 가설과 부합하는 말을 남겼다. <반지의 제왕>을 쓴 영문학자 J R R 톨킨은 판타지 소설에 대한 열광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섬이나 먼 도시의 탑을 보았을 때 우리가 느끼는 본질적인 보상감에서 유래한다고 했다. <젤다의 전설>을 만든 미야모토 시게루는 낯선 도시를 처음 탐색할 때의 그 기분을 똑같이 느끼게 해주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상상계를 누비는 픽션이 원래 낯선 자연풍경에 이끌리도록 진화한 선호를 예기치 않게 작동시킨다는 가설이 맞다면, 현대인이 상상에 기반한 픽션을 즐기고 소비하는 정도는 성별, 나이, 성격 등에 따라 체계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첫째, 조상 여성이 식물성 음식을 채집할 때 조상 남성은 낯선 곳을 널리 다니며 동물을 사냥했으므로, 남성은 여성보다 상상의 세계에 평균적으로 더 빠져들 것이다. 둘째, 아이와 청소년은 낯선 곳을 탐색했다가 빈손으로 돌아오더라도 부모가 배 속을 든든히 채워 줄 것이므로, 어리거나 젊은 사람은 나이 든 어른보다 상상의 세계에 더 빠져들 것이다. 셋째, 성격 5요인 중 하나인 개방성은 새로운 것에 대한 추구, 모험심, 공간 인지 능력과 연관되므로 개방성이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상상의 세계에 더 빠져들 것이다.
    왜 음모론을 퍼뜨리려 애쓸까
    음모론과 가짜뉴스
    왜 점을 믿는가?
    두보르그와 보마르는 참여자 230명에게 로맨스, 전쟁, 하이틴, 스릴러, 가족, 전기, 상상계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대한 선호를 물었다. 예측대로, 상상계를 그린 영화를 매우 좋아한다고 답한 이들은 남성이고, 어리거나 젊고, 개방성이 강한 경향이 있었다. 아이들이 요정, 드래건, 마법사, 공주, 용사가 활약하는 판타지라면 정신을 놓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요컨대, 상상의 세계를 담은 픽션에 오늘날 우리가 빠져드는 까닭은 낯선 환경을 탐색하여 유용한 정보를 얻도록 진화한 마음이 뜬금없이 픽션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독자가 상상의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세계에 대한 정보를 애타게 갈구하기에, 작가는 줄거리와 무관한 배경지식을 점점 더 많이, 더 상세히 제공하게 된다. 열성 팬들은 톨킨이 만든 인공 언어인 엘프어를 배운다. <해리 포터>에 나오는 가상의 스포츠인 퀴디치를 실제로 경기한다. 포케몬 도감에 나오는 1000마리 이상의 포케몬 이름을 줄줄 외운다.
    나는 중학생 때 음악방송 방청석 입장을 기다리다 경호원에게 멱살을 잡힌 적 있다. 그때의 트라우마인지 3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경호원을 보면 몸과 마음이 위축된다. 출근 준비는 10분 컷이지만 K팝 팬이 모이는 오프라인 행사에 갈 때는 신중히 옷을 골라 다려 입고 하나밖에 없는 명품 가방을 들기도 한다. 한주먹거리로 보이지 않겠다는 속물적인 자구책이다. 이런 내게 지난해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방탄소년단 슈가의 콘서트에서 경호원이 팬들에게 박수받는 모습을 본 것이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자연의 섭리에 관객의 열기까지 더해져 냉방을 해도 공연장 내부가 후덥지근했다. 그 속에서 경호원과 안전요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스탠딩 구역 관객에게 물을 나눠주고, 컨디션 난조를 호소하는 사람들을 부축해 휴게공간으로 이끌었다. 그 모습에 조금 얼떨떨한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다. 팬을 제압이 아닌 보호의 대상으로 대하는 경호원의 모습이 새로웠기 때문이다. 슈가의 콘서트는 공연장인 케이스포돔 앞 핸드볼경기장을 대관해 대기 공간으로 제공했을 정도로 관객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꼼꼼히 계획하고 투자한 행사였다. 그런 조건에서는 경호원의 모습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최근 K팝 아이돌 경호원의 팬 폭력 문제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팬사인회에서 보안을 이유로 팬들의 속옷 검사를 한 사건, 공항에서 팬을 밀쳐 넘어뜨린 일이 지난해 연달아 공론화되며 K팝의 이미지를 퇴보시켰다. 이제 K팝을 연상하면 체격적 우위를 가진 남성 경호원이 여성이 다수인 팬들을 위협하는 그림이 떠오른다. 부끄럽고 안타깝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2023년은 K팝 산업이 이례적인 규모로 안전에 투자하기 시작한 해였다.
    현실과 대중의 인식이 다른 이유는 K팝 산업이 경호의 대상에서 소규모 팬과 접촉하는 현장을 열외시킨 탓이다. 현재 K팝 산업은 대규모 관중이 밀집하는 유료 콘서트에 한해 선택적 경호를 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로 안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고 공연 산업이 성장하며 관객의 종합적인 만족에 주의를 기울이게 됐기 때문이다. 조용필, 아이유, 방탄소년단, 임영웅 같은 초대형 가수뿐만 아니라 2023년을 기점으로 K팝 공연 전체의 안전체계 수준이 높아졌다.
    나는 케이스포돔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산다. 내 취미는 주말에 콘서트장 서성거리기다. 불심검문 나온 경찰처럼 관객 입장이 원활하게 진행되는지, 휴게공간에 온열기구가 설치된 경우 옆에 소화기가 잘 놓였는지 따위를 살핀다. 수시로 티케팅에 도전해 공연도 많이 본다. 내부에서도 역할놀이는 계속된다. 안전에 집착하기 때문이 아니라,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전에는 체계와 자원이 필요하다는 걸 콘서트장 앞을 서성이며 매번 깨닫는다. 그러나 K팝 산업의 선택적 경호 기조 아래, 대중의 눈에 잘 띄지 않는 현장은 안전의 책임이 경호원 개개인의 성미와 판단에 맡겨지고 있다. 팬 대상 폭력 문제가 끊이지 않는 근본 이유다.
    팬을 업신여기고 안전에 우열을 둬온 K팝 산업의 착각이 값비싼 청구서로 돌아오고 있다. 경제학자 헤르만 지몬은 저서 <이익이란 무엇인가?>에서 (이익이란) 기업이 이행해야 할 모든 의무를 다한 다음에 남는 잔존 금액이라 정의했다. 이익엔 의무가 있다. 의무를 다하는 건 이익이 된다. 경호원이 때릴까 봐 걱정하는 팬들이 있는 한 K팝이 수백억원의 마케팅 비용을 들여 구현하려는 환상적이고 쿨한 삶, 다양성과 자기 긍정의 가치는 기만과 모순으로 여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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