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다온테마
로그인 회원가입
  • 자료실
  • 자료실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미국 5월 개인소비지출 물가 2.6%↑···예상치 부합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행복한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회   작성일Date 24-06-29 07:09

    본문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미국의 5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2.6% 상승했다고 미 상무부가 28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전월과 비교해선 보합에 머물렀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PCE 가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6%, 전월 대비 0.1% 각각 상승했다. 모두 앞서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에 부합하는 수준이다.
    근원 PCE 가격지수의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은 2월 이후 4월까지 3개월 연속 2.8%에서 정체된 모습을 보인 바 있다.
    PCE 가격지수는 미국 소비자들이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때 지불하는 가격을 측정하는 지표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선호하는 인플레이션 지표다. 연준은 통화정책의 목표 달성 여부를 판단할 때 소비자물가지수(CPI) 대신 PCE 가격지수를 준거로 삼는다. PCE 가격지수가 완만하게 나올 경우 금리 인하 기대감이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연준은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인 2%로 안정적으로 둔화하고 있음을 확신할 때까지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 가장 최근 물가지표가 올해 초보다 긍정적이었고, 물가 목표를 향한 완만한 진전이 추가로 있었다고 평가하며 인플레이션이 2%로 안정적으로 둔화하고 있다는 확신을 더 갖기 위해선 좀 더 좋은 지표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연준은 올해 연말 근원 PCE 가격지수 상승률 전망치를 3월 전망 때보다 0.2%포인트 상향한 2.8%로 제시한 바 있다.
    지난 12일 발표된 5월 CPI에 이어 이날 PCE 가격지수도 인플레이션 개선 신호를 보내며 시장의 금리인하 기대감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부터 몇몇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던진다. 너 T야? 그들은 하나같이 내 대답을 듣기 전에 스스로 답한다. T 맞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T(Thinking)형 인간이 되었다. 세상에나, 내가 진실과 사실에 관심이 많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심지어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 유형의 사람이라는 걸 얼마 전에서야 알았다. 풍문으로 들은 T의 반대 성향은 F(Feeling)라는데, 사람과 관계에 관심이 많고, 공감 잘하고, 주관적 판단에 강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혈액형이나 별자리 등등으로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구분하는 일에 별 관심이 없던 나는 당연히 MBTI 검사 역시 해보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T형 인간인지, 아니면 F형 인간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내게 ‘대문자 T’라는 명찰을 달아주었다.
    알베르 카뮈가 1942년 발표한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문제적 인물이다. 유일한 혈육인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엄마가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무덤덤했다. 양로원 수위가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이미 못을 박아둔 관 뚜껑을 열어주겠노라고 호의를 베풀었지만, 그는 수위를 말렸다. 모정이니 슬픔이니 하는 마음은 뫼르소에게 애초부터 없었다. 이 이야기까지만 듣고 뫼르소는 T형 인간이네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뫼르소는 과거 한 직장에 다녔던 마리를 만나 코미디 영화를 함께 보고 해수욕을 즐겼다. 사랑도 나눴다. 엄마의 장례식을 마친 직후의 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뫼르소는 F형 인간이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어떤 이는 T와 F 사이 어디쯤에 뫼르소가 존재하지 않겠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다. 뫼르소는 후대 평론가들에 따르면 부조리한 세계를 사는 부조리한 인간, 즉 관습과 규칙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간상의 현현(顯現)이다. 모든 사람이 T나 F, 혹은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196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과테말라 출신 작가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의 <대통령 각하>는 가상의 중남미 국가에서 자행된 독재의 잔혹함과 신음하는 민중의 삶을 그렸다. 각하는 아무도 믿지 않는, 또 아무도 믿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조종하는 데 천재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한 사람, 각하의 심복 미겔 카라 데 앙헬만큼은 각하를 믿고 따랐다. 그런 앙헬에게 임무가 주어졌다. 각하의 정적 에우세비오 카날레스 장군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평범한 악인
    뉴진스, 하이브 그리고 시간 여행
    눈물
    냉철한 T형 인간인 앙헬은 장군을 지능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철저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장군의 딸 카밀라를 처음 본 순간, 그는 F형 인간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카밀라를 돕고 싶은 마음이 어느 틈엔가 생겼고, 한편에서는 몸과 마음을 모두 소유하고 싶은 충동이 불 일 듯 일어났다. 각하의 심복으로서 해야 할 일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뫼르소처럼 앙헬 역시 T나 F, 혹은 그 사이에서 맴도는 인간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MBTI 무용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성향을 잘 파악하면 함께 일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 십분 이해한다. 다만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마음이 있고,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파스칼에 따르면 인간은 갈대이되 생각하는 갈대 아니던가. 그런 이들을 하나의 성향으로 묶어버리는 순간, 사회는 경직될 수밖에 없다. 침소봉대하자면 아(我)와 피아(彼我)를 구분하는 세상의 출현은 거기서 시작된다. 사족처럼,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 내게도 ‘대문자 F’ 성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정치 시스템이 위기를 맞고 있다. 정치적 극단주의가 득세하면서 혐오와 차별은 일상이 됐다. 대화와 타협은 사라지고 공동체는 분열·붕괴하고 있다. 경제적 양극화까지 더한 ‘이중의 위기’ 속에 시민의 삶은 불안에 내몰렸다. 한반도 역시 이런 흐름에서 비켜나 있지 않다. 남북 간 긴장과 적대는 최고조에 이르고, 한국 사회 내부 갈등도 그 어느 때보다 깊다. 시민들은 민주주의와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묻는다. 경향신문이 26일 <2024 경향포럼>에서 세계적 정치인·석학들과 함께 ‘분열의 시대, 다양성과 포용이 희망이다’를 주제로 해법을 모색했다.
    정치 지도자들과 석학들은 극단주의가 혐오와 차별을 통해 사회 분열을 만들고 악용하는 정치 현실을 우려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은 대담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는 일부 정치인이 두려움을 만들고 혐오를 조장하며 ‘우리 대 그들’ 구도로 가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위험한 민주주의>의 저자 야스차 뭉크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한국에서도 ‘진정한 국민’ ‘우리 편만 애국’ 등을 주장하는 정치인이 있는 것으로 안다. 바로 포퓰리즘적 주장이라고 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캐시 박 홍 UC버클리대 교수는 혐오는 결국 권력이 만들어내는 것으로, 그들의 소유한 재원과 자본의 독점에서 눈을 돌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자스민 전 정의당 국회의원은 국내총생산(GDP)의 높고 낮음에 따라 외국인을 차별하는 한국의 ‘GDP 인종주의’를 꼬집고 이를 증폭시키는 정치를 개탄했다. 특히 국제정치학계 석학 옌쉐퉁 중국 칭화대 국제관계연구원장은 포퓰리즘이 당분간 동력을 얻을 것이고, 그로 인한 분열이 또 다른 국제적 분쟁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지정학적 대치 최전선인 한반도에서 긴장을 부추기는 움직임에 대한 경고로도 들린다.
    해법은 결국 서로를 구분하고 타인을 희생시키는 대신 함께 더 나아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클린턴)는 조언대로 포용과 다양성, 그를 위한 연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다양성과 포용은 극단주의의 배타성에 맞서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는 경쟁사회를 넘어선 초협력 사회, 정치혐오를 넘어 토론·숙의의 공론장이 이끌어가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민주주의의 가능성은 능동적 시민에서 찾을 수 있다며 시민의 역할을 강조했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사회의 각 영역에서 극단주의가 허물고자 하는 그 다양성과 포용을 지켜냄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 정치는 혐오와 갈등을 키우는 팬덤 정치가 아닌 다원적 민주주의를 모색하는 관용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대화와 설득의 정치로 복귀해야 함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사회와 정치의 근간인 시민들부터 혐오와 차별을 용납하지 않으며, 상대를 인정하고 연대하는 관용의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곧 삶의 위기임을 알아야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