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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세계선수권 제패’ 한국 유도, 파리에서도 “금빛 업어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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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행복한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2회   작성일Date 24-06-1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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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김민종·허미미 앞세워 11명 출전12년 만에 노 골드 털고 명예회복
    2개 올림픽 연속 ‘노 골드’에 그쳤던 한국 유도가 파리에서 명예 회복을 벼르고 있다. 지난달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한 김민종(24), 허미미(22) 등을 앞세워 2012 런던 대회 이후 12년 만의 금메달을 노린다.
    파리 올림픽 개막을 43일 앞둔 13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대표팀 선수들의 기합 소리가 오전부터 넓은 유도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서로 기술을 걸며 넘기고, 넘어질 때마다 쿵, 쿵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남자 최중량급인 100㎏이상급 대표 김민종은 어느새 한국 남자 유도의 간판으로 부상했다. 도쿄 올림픽 16강전에서 탈락했던 그가 3년 만에 부쩍 성장했다. 도쿄 대회 금메달리스트 루카스 크르팔레크(체코)와 은메달을 딴 구람 투시슈빌리(조지아)를 각각 준결승과 결승에서 연파하고 세계선수권 우승을 차지했다. 김민종은 올림픽 메달은 하늘을 감동시킬 만큼 노력해야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얻는다고 했다. 하늘을 감동시킬 만큼 운동하는 중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마장동 정육점 아들’로 유명한 김민종은 금메달을 목에 걸고 부모님과 함께할 만찬을 기대하고 있다.
    허미미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재일교포다. 2021년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유언으로 한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지난달 세계선수권 여자 57㎏급 결승에서 세계 랭킹 1위 크리스티 데구치(캐나다)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 유도가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한 건 1995년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정성숙(61㎏급), 조민선(66㎏급) 이후 29년 만이다. 허미미의 목표는 분명하다. 대표팀 프로필 장래희망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고 적었다.
    대표팀은 김민종과 허미미를 비롯해 남녀 11명이 올림픽에 나선다.
    도쿄 올림픽 직후인 2021년 새로 부임한 김미정 여자 대표팀 감독은 (2021년) 당시만 해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 막상 국제대회에 나가보니 우리 선수들이 절대 밀리지 않더라며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목표는 당연히 금메달이지만, 일단은 색깔에 관계없이 1~2개의 메달을 노려보겠다. 우리 선수들을 더 믿어주시라고 말했다. 김 감독과 같은 시기 남자 대표팀을 맡은 황희태 감독은 욕심 같아서는 금메달 2개라고 당당히 얘기하고 싶지만, 일단은 금메달 하나라고 하겠다고 말했다.
    ‘왜 격노했을까?’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하여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이 사고에 대한 해병대수사단의 수사 과정에서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과 관련하여 대통령의 격노가 불거진 것이다. 대통령이 실제로 격노했는지, 어떤 식으로 반응했기에 격노라고 하는 것인지, 현장에 없었던 우리는 사실 알 길이 없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은 오히려 편견의 살을 붙여 의혹을 부풀릴 뿐이다. 대통령의 행위가 격노였는지 질책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격노로 해석되어 널리 퍼진 것은 분명하다. 여기서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수사 중인 이 사건 자체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화와 분노가 가지는 의미다.
    왜 우리는 격노할까? 사람들은 종종 어떤 일에 대해 화를 내고 분노한다. 분노는 사실 상호작용으로 얽혀 있는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이다. 누구나 화를 내고 분노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이 격노하면 안 되냐, 격노한 게 죄냐는 말은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대통령도 사람이니까 격노할 수 있지만, 대통령으로서 화를 내는 게 적절한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그렇다면 십분 양보하여 이렇게 물어야 한다. 왜 우리는 화를 잘 내는 것일까? ‘화병’(火病)이라는 한국적 병리 현상이 국제적 학술 용어로 등재된 것을 보면, 우리는 화를 잘 내는 민족인가?
    대통령의 ‘격노’에 관한 보도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먼저 ‘분노’를 생각했다. 어떤 일에 분개하여 몹시 성을 내는 걸 분노라고 한다. 무언가 불쾌한 일이 생겼을 때 이를 회복하고자 하는 행위가 분노이다. 그렇다면 격노는 무엇을 말하는가? 격노의 사전적 의미는 몹시 분하고 노여운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것을 말한다. 분노를 이해하려면 분한 감정이 드는 상황을 떠올리면 쉽다. 동생이 혼자 놀다가 부딪혀서 울고 있는데 엄마가 전후사정을 알아보지도 않고 동생을 때렸다고 야단치면 분한 감정이 든다. 어떤 일을 규정과 절차에 따라 처리하고 있는데, 상사가 왜 제대로 하지 않냐고 질책하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분하다는 것은 억울한 일을 당하여 화나고 원통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노의 전제조건은 ‘부당한 피해’
    분노를 특징짓는 내용을 알려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분노는 자신이나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정당한 이유 없이 경멸당할 때 이에 대해 상상으로 보복하는 고통을 수반하는 욕망이다. 이에 따르면 분노에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우선 분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의 관점에서 무시와 경멸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 그 행위는 자신이나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 행해진 것이어야 하며, 당한 사람은 그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분한 사람에게 고통과 불쾌한 감정을 일으키며, 그것에 대해 보복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분노의 대상은 언제나 나에게 부당하게 피해를 준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왜 어떤 경우에 나에게 고통을 주는 것일까? 우리는 종종 잘 열리지 않는 문을 발로 차며 화를 내기도 하고, 나를 걸려 넘어지게 한 돌부리에 화를 내기도 한다. 그것은 문이 제대로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어긋나고, 걸림돌이 나의 산책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의지가 없는 문과 돌에 분노하지는 않는다. 분노는 대개 누군가가 내가 깊이 관심을 가지거나 높이 평가하는 것을 부당하게 훼손했을 때 일어난다. 엄마의 사랑과 신뢰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기대하였는데, 정당한 이유 없이 꾸중을 듣는다면 누구나 분한 감정을 느낀다. 법규범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법치주의의 정신을 내면화한 사람이 정당하게 일을 했는데도 오히려 야단을 맞거나 법을 어기라고 강요당한다면, 분노하는 게 당연하다. 이처럼 분노의 가장 일반적인 전제조건은 ‘부당한 피해’이다.
    분노를 일으키는 부당한 행위는 개인의 인격을 비하할 뿐만 아니라 그가 차지하는 사회적 지위를 훼손한다. 나를 모욕하거나 경멸하는 것, 나를 하찮은 존재로 취급하는 것은 모두 내가 사회적으로 수행하는 역할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자신의 지위에 대해 걱정하며,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분노를 표출한다.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려고 하는데 직원이 전화를 받으며 바로 응대하지 않으면, 우리는 고객의 권리를 침해받았다고 생각하여 분노한다. 그러나 그 전화가 교통사고를 당한 어머니의 비상 전화였다는 사실을 알면 화를 낸 것을 미안해한다. 나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려고 하였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지위 손상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상상만으로도 분노하고 화를 낸다.
    분노는 부당하게 손상된 상태와 지위를 회복하려는 행위이다. 분노는 언제나 보복을 원한다. 잘못에 대해 보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경향이다. 그러나 분노는 언제나 사회 안에서 이루어진다. 민주사회에서의 분노와 권위주의 사회에서의 분노는 표현되는 양태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민주사회에서는 개인 상호 간의 분노는 부정적으로 보고, 사회와 제도에 대한 분노는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사회를 보고 우리는 분노를 느끼면서 ‘이에 대해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폭우로 수해를 입은 현장에 투입되어 실종자 수색을 담당한 해병대원이 구명조끼조차 착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것도 안전 불감증에 걸린 제도에 대한 사회적 분노이다.
    대통령은 격노하면 안 된다
    이에 반해 권위주의 사회에서는 부하 직원을 향한 상사의 분노가 부당하게 훼손된 상태의 회복보다는 권력 자체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상사는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위협을 느끼면 분노를 표출하여 자신의 지배권을 다시 주장하고 하급자가 복종하도록 위협할 수 있다. 이러한 형태의 분노는 계층 구조를 강화하고 반대 의견을 억제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첫째, 두려움과 복종의 문화를 영속화한다. 보복의 가능성을 알고 있는 부하 직원은 반대 의견을 표명하거나 부당한 관행에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작다. 개인이 건설적 비판보다 자기 보존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혁신과 비판적 사고를 저해한다. 둘째, 통제 메커니즘으로 분노를 자주 사용하면 계층 내에서 폭력과 보복의 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원한을 품은 부하 직원은 상사를 훼손하기 위해 은밀한 수단을 모색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불안정하고 불신하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끝으로, 권위주의적 맥락에서 분노는 힘이 바로 정의라는 비민주적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이는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기관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약화시킨다. 분노가 합리적 담론과 공정한 절차를 대체하게 되면 정치 체제의 정당성이 훼손되어 잠재적 불안과 격변을 초래할 수 있다.
    ‘경청의 기술’과 정치
    한국의 보수, 길을 잃다
    상식을 파괴하는 정치
    권위주의 사회에서 분노하고 격노하는 주체는 언제나 힘을 가진 권력자다. 왜 권력자는 격노할까? 권력자는 대부분 자신의 지위가 훼손되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할 때 격노하고, 단지 권력을 보여주기 위해 분노를 사용하기도 한다. 분노의 전제조건인 ‘부당한 훼손과 침해’가 없는데도 권력자는 화를 낸다. 이 경우 분노가 격분의 형식으로 나타나긴 하지만, 화를 낸다는 것이 실제로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잘못에 대하여 엄하게 나무라는 ‘꾸짖다’ 또는 ‘야단치다’를 의미한다. 대통령실의 뒤늦은 해명에 따르면 대통령은 사실 군 당국과 당시 수사단장을 야단쳤다고 한다. 물론 대통령은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처리하는 담당자를 질책할 수 있다. 거기에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 또 소리를 높여 호되게 꾸짖는 방식이 과연 옳은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우리가 진정한 민주사회를 원한다면, 상급자가 하급자를 야단치는 전통적 방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 문화의 고유한 질병이라고도 할 수 있는 화병은 정당한 이유 없이 야단맞은 사람들이 분노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발생하는 정신적 신체적 질환이지 않은가? 화를 내도 시원치 않은 국민이 오히려 화를 당한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 권력자가 화를 자주 내면 국민이 화병에 걸리거나 아니면 정권을 뒤집는 분노의 물결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래서 대통령은 격노하면 안 된다.
    1960년대 비폭력 저항운동에 앞장선 흑인 민권운동가 제임스 로슨 목사가 별세했다고 10일(현지시간)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로슨 목사는 지난 9일 수십년간 살았던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유족이 AP에 전했다. 향년 95세.
    감리교 목사인 그는 1960년대 미국에서 인종차별에 맞서 비폭력시위를 주도했다. 인도의 독립투쟁을 이끈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 철학을 따랐다. 그와 함께 활동했던 흑인 민권운동의 아이콘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는 로슨 목사에 대해 세계 비폭력주의의 선도적인 이론가이자 전략가라고 평가했다. 비폭력주의 신념으로 대학생 때는 한국전쟁 징집을 거부해 13개월 동안 수감되기도 했다. 논픽션 작가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로슨 목사는) 순하고 온화했지만 감옥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진정한 급진 기독교인이었다고 평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로슨 목사는 인도에서 3년간 간디의 비폭력 저항 전술을 학습한 뒤 미국으로 돌아와 1957년 오하이오주 오벌린대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킹 목사를 만났다. 당시 미국 흑인사회는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방법을 두고 의견이 갈렸는데, 두 사람은 비폭력주의로 의기투합했다. 로슨 목사는 미국 남부에서 비폭력시위를 이끌어달라는 킹 목사의 요청에 따라 테네시주 내슈빌로 가 밴더빌트대 신학교에서 공부하며 비폭력주의를 설파했다. 1960년대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SNCC) 창립 멤버이자, 킹 목사가 창설한 흑인 인권운동 단체 남부기독교지도자회의(SCLC)의 비폭력 교육 책임자로 활동했다.
    그의 비폭력 저항 결과로 1960년 내슈빌의 식당, 영화관, 버스, 수영장 등 공공장소에서 ‘유색인종 출입금지’ 표지판이 사라지게 됐다고 미국 민권운동 연구자들은 평가한다고 WP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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